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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찍이 신민회(1907년), 청년학우회(1909년), 흥사단(1913년)을 차례로 조직하여 민족운동을 이끌어
나갈 주체로서의 청년 일꾼들을 양성하는 한편, 점진학교, 대성학교, 동명학원 등을 설립하여 체계적인 교육으로 청소년들을
육성하는 민족교육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흥사단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 1963년부터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흥사단이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청소년 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1956년
흥사단대회 대회사에서 주요한 선생은 새 세대 청년들이 중심에 서야 한다고 선언했다. 1948년에 조직되었던 청년부가
1956년에 분화되어 고등학생회를 별도로 창립하고, 청년부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모색되었다.

4·19혁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은 흥사단은 대대적인 홍보활동과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1960년 5월 7일, 임원회의에서는
흥사단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6월 28일 발전기획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61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연 3일에 걸쳐 창단 기념대회를 하며 밝은 미래를 다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발생한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흥사단은 1963년 7월 22일까지 2년 2개월간 활동정지를 당하게 된다.
긴 동면 끝에 정부 당국에 사회단체 등록 절차를 마치고 새롭게 활동을 재개하면서, 단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청소년 운동을
활발히 전개해야 한다는 요청은 드디어 ‘아카데미’란 새로운 청소년 운동체로 구체화되었다.

1963년 9월 1일에 제정된 ‘세포의 조직과 운영요강’에 따라, 각 지역 분회 조직과 청년 아카데미, 대학생 아카데미, 고등
학생 아카데미, 중학생 아카데미, 소년 아카데미를 창립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63년 8월 25일에는 흥사단 본부 강당에서
청년 아카데미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이어 8월 31일에는 대학생 서울 아카데미가, 9월 13일에는 고등학생 서울 아카데미가
창립을 보았다.

이어서 1963년 10월 5일 부산 분회가 창립되고, 10월 6일에는 서울 분회가 창립되고, 뒤를 이어서 인천(64. 1), 대구
(64. 9), 광주(65. 9), 대전(66. 3), 청주(66. 6), 원주(66. 5) 전주(67. 11), 진주(67. 11), 여수(68. 9), 제주(68. 10) 등지
에서 아카데미와 분회가 창립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흥사단 지방조직에서 실질적으로 조직체의 생명은 아카데미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

이처럼 세포 조직의 확대와 아카데미 조직의 활성화에 따라 흥사단은 새로운 활기를 얻게 되었고, 다양한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해 나갔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군사정부가 내건 공약과 구호와 더불어 부정부패에
대한 개혁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활력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군사정부는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 사회개혁을
위한 정신운동과 국민운동을 권장 혹은 묵인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흥사단이 내건 인격 혁명과 민족주의 이념은 젊은 청소년층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조직과
운영 및 독특한 의식들, 선배 단우들의 적극적인 지도에 힘입어서 지부의 직할 아카데미로서 ‘대학생 서울아카데미’와 ‘고등학생
서울아카데미’가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1960년대 후반 대학생 서울아카데미의 경우, 흥사단 본부가 있던 을지로의 대성빌딩 4층 집회실이 좁아서 고민을 할 정도가
되었다. 그 대안으로 몇 가지 방안이 검토되었고, ‘기능별 분할이냐?’ ‘학교별 분할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본부에서
학교별 분할 방침을 확정하여, 68년부터 ‘대학생 서울 아카데미’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등의 순으로 분할되기 시작했다.

물론 1964년에 이미 성균관대 도산연구회가, 1966년에 건국대 개척자회가 창립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으며, 고등학교도
1967년에 경기고등학교를 선두로 학교별 아카데미가 창립되기 시작하여 양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70년대에 이르러
아카데미는 그 수와 양에 있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와 같은 성공의 배후에는 본부와 원로 단우들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을 누비면서 이루어진 안병욱 교수의 헌신적인 지도는 아카데미 운동의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본부 주관의
아카데미 간부 수련회를 통한 동질성의 확보와 횡적인 유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1967년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5박 6일 동안 경기도 고양군에서 열린 제 1회 전국 대학생 아카데미 간부수련회와 1968년
1월 13일부터 17일까지 4박 5일간 충남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서 열린 제 1회 전국 고등학생 아카데미 간부수련회는 그 대표
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수련회는 흥사단이 총력을 기울인 수련회로서 알찬 프로그램, 일류급 강사진, 치밀한 계획과 진행,
참석자의 엄선으로 이루어졌다. 본부 주최의 간부 수련회는 그 밖의 하위 조직에서 주관하는 각종 수련회의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의 회원 수련활동에도 하나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학생 아카데미는 전반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지향하는 대학 동아리로 변화하였다.

유신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학생운동 중심의 아카데미 운동은 저항적, 투쟁적 성격이 점점 강화되어가면서
80년대 중반에는 서울, 부산, 광주, 대전, 청주 등의 대학 아카데미는 완전히 학생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대체로 대학생의 의식화 커리큘럼을 통해 세계관의 변화를 모색하는 철학과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학습, 한국 근대사 학습
을 통한 민족운동에 대한 이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는 정치경제학 및 사회철학 학습을 통해 실천적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학습과정을 거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대학생 아카데미는 비록 지역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었으나 대체로 민주화 운동의 주력으로써의 역할을 하였다.

1990년대 이후 아카데미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1994년 3월 ‘흥사단 아카데미 총동문회’가 발족되면서 아카데미 운동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 왔고 2000년들어 흥사단 본부에는 2회의 아카데미 교본을 발간했으며 2013년에 아카
데미 창립 50주년을 맞아 ‘흥사단아카데미 50년사’ 집필을 통해 아카데미 창립과 시대적 흐름에 맞춘 콘텐츠 개발, 체계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대한민국사회에 청년인재양성을 하기 위해 다시 한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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